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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미 정 류 LA카운티 법원 판사, 가주 첫 한인 여성 판사…"2·3세 법조인 기대"

태미 정 류 판사는 ‘가주 첫 한인 여성 판사’로서 한인 여성 법조인 리더 중 한명으로 손꼽히고 있다.   류 판사는 남가주한인변호사협회 회장(1994년), LA아태계미국인변호사협회 창립 멤버, 한인가정상담소, 한미연합회, 한인민주당협회 등의 단체와 연계하여 LA지역 한인 커뮤니티에 봉사해 왔다.   1999년부터 가주 검찰청 최초의 한인 커뮤니티 연락관으로 활동하던 류 판사는 2002년 LA카운티 수피리어 법원 판사로 임명되며 가주 첫 한인 여성 판사이자 4번째 한인 판사가 됐다. 현재 LA카운티 캄튼 수피리어 법원서 근무하고 있다.   류 판사는 한국 서울서 태어나 10세때인 1970년 현대건설 괌 지사를 맡고 있던 아버지를 따라 가족이 이주하면서 타국 생활을 시작했다. 보다 나은 교육 기회를 찾아주려는 부모님 덕분에 5년 후 북가주 베이지역에서 고등학교 생활을 할 수 있게 됐다.   가고 싶었던 유일한 학교인 UC버클리만 지원했다는 류 판사는 입학 후 의사나 바바라 월터스와 같은 언론인이 되는 것이 어떻냐는 아버지의 권유에 과학과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주저했다고 한다.   류 판사는 대학시절 지역 비영리단체의 아시안 변호사들이 가르치는 ‘아시아계 미국인과 법’이란 수업을 듣게 되면서 법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     수업을 통해 아시안 등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과 불공평한 처사 등에 대해 알게 된 류 판사는 이후 아시안법률코커스(ALC)에서 인턴을 하며 법조계에 입문하기로 결정했다.   류 판사는 ALC의 변호사들이 진행한 2차 세계대전 중 억류된 일본계 미국인들을 위한 배상금 확보 소송을 도우면서 "변호사가 실질적으로 역사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고 밝혔다.   류 판사는 “정부가 잘못한 것을 인정하고 사과하도록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이런 법률이 마련돼 있고 법원이 정부로부터 독립됐기 때문이라 생각해 변호사가 되고 싶었다. 수업을 가르치던 변호사의 격려로 로스쿨에 지원하게 됐다”고 회고했다.   1984년 8월 UCLA 로스쿨 진학 후 LA서 활동을 시작한 류 판사는 한미연합회(KAC) 등 단체에 가입하고 한인변호사협회 법대생 회원으로 참가하는 등 사회적으로 더 많은 일에 관여하게 됐다.   1987년 졸업 후 이듬해 가주검찰청에 들어가 검사 생활을 시작한 류 판사는 2000년 보건, 교육, 복지 부서를 감독하는 차장검사로 승진 후 2002년 LA카운티 수피리어 법원 판사로 임명됐다.   류 판사는 1999년 가주 등 36개 주가 필립모리스 등 담배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2080억 달러의 배상금 지급 소송에서 가주 대표 검사로 나서 승소함으로써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됐다.     류 판사는 1992년 LA폭동을 계기로 한인 커뮤니티의 정치력 신장에 대한 관심과 공공서비스에 참여하는 판사를 목표로 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류 판사는 “LA폭동으로 무력감을 느낀 한인들은 유권자로서의 영향력을 가져야 하는 상황을 깨닫게 됐고 이후로 한인 커뮤니티가 크게 활성화됐다고 생각한다. 판사직에 지원한 이유 중 하나는 우리 커뮤니티에 일할 사람이 부족하기 때문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류 판사는 지난해 LA총영사관이 주최한 차세대 리더십 세미나에 패널로 참가하는 등 차세대 육성에도 관심이 많다.   류 판사는 “제가 여성이고 소수계라는 사실만으로도 많은 이민자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에게 여전히 아메리칸 드림의 나라다. 소수계가 진출하기 쉽지 않지만, 법조계에 더 많은 2세, 3세 변호사가 배출되기를 바란다”며 기대감을 피력했다. 박낙희 기자판사 la카운티 한인 판사 법원 판사 남가주한인변호사협회 회장 태미 정 류 태미 류 여성 판사 여성 검사 법조인 창간특집

2023-09-21

[독자 마당] 시원한 물 한잔

35년 지기인 친구가 몇장의 사진과 비디오로 찍은 영상을 카톡으로 보내왔다. 그동안 검사로 재직하다가 북가주 콘트라코스타 카운티 수피리어 법원 판사로 임명된 그녀의 아들 글렌 H 김 판사의 선서식을  담은 영상이었다. 볼수록 영광스럽고 자랑스럽다. 1세대 이민자의 아들로서 그런 막중한 자리에 임명됐으니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지난해 9월에 있었던 그 선서식에서 아들에게 법복을 입혀주는 장면은 참으로 가슴 뭉클한 감동이었다. 이젠 감히 ‘현준이’라 호칭하기도 송구하다고 답을 했더니 너의 아들이기도 하다며 “어떻게 살아왔는지….모두들 수고가 많은 이 세상! 너와 나, 시원한 물 한잔이야.  많이 사랑하며 지켜보자!”는 답이 다시 왔다.     그녀의 끊임없는 기도 덕분인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늘 기도하는 모습을 보이고 하이힐만 고집하던 나와는 달리 항상 굽 낮은 신발만 신고, 걸음은  다른 사람의 두배는 빨리 걷던 그녀의 모습이 더러는 이상할 때도 있었다.     주말이면 남편 사업을 거들고, 틈만나면  바닷가 근처의 성당들을 순례하면서 심신을 다스리며 누구보다도 부지런히 살아온 그녀다. 언젠가는 자신의 아이들과 자주 갔었다며 나를 ‘내셔널 간디 뮤지엄’에 안내한 적도 있다.   그렇게 말없이 자식을 위해서는 자신을 버리고 오직 아내와 엄마의 역할만 고집하며 열심히 산 그녀가  자식들로 부터 받은 영광은 지극히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정의롭게 봉사하는 일에는 늘 앞장서던, 지금은 영문학 박사가 된 그녀의 딸이 대학생 때 내게 선물 한 ‘우리 엄마에게 잘 해주셔서 감사해요!’라고 한글로 쓴 UC버클리 로고가 찍힌 대학 노트가 내 책꽂이 위에서  ‘맞습니다’라고 맞장구를 치는 듯하다. 켈리 조독자 마당 아들 글렌 법원 판사 영문학 박사

2023-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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